소설/팬픽

2023.09.18 11:51

별들의 과도기-3

웨인은 이그나시아가 여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로 식당을 나와서 충전소에 들려 힐의 우주선을 힐과 같이 옮겨 집 앞에 나눈 뒤에 힐에게는 소파를 주고 자신은 판초를 바닥에 깔고는 누웠다

이렇게 하루가 가네

 

그러게 웨인 너 덕분에 오랜만에 식당에서 끼니도 해결해보고 네 친구도 만나보고 그저 불시착해서 기껏 그린 그림의 액자가 망가져서 최악의 하루가 되는 줄 알았는데 정말 고마워

 

친구 사이에 뭘


판초를 깔았다지만 여전히 딱딱한 바닥에 여간 잠이 오지 않았던 웨인은 중얼거렸다.

 

아디오스 스페이스 카우보이

 

그 소리를 들은 힐은 놀란 듯이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웨인에게 물었다

 

웨인 너 아직도 그 말버릇이 있어?”

 

자주 하는 혼잣말을 성년이 되어 처음으로 남에게 들려준 웨인은 당황한 채로 자리에서 벌떡 앉아서 말이 빨라진 채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예전에 보육원에서 봤던 영화가 기억이 나서 그런 것도 있는데 물론 내가 그 영화를 좋아했고 어릴 때 거기서 나온 주인공 흉내 내려고 냄비 뚜껑을 머리에 쓰고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손가락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하기도 했지만, 그거 때문만은 아니고 처음 여기에 정착했을 때 공간이 너무 공허해서 빈 공간에 거기 누구 있냐고 인사한 게 시작이 돼서 어쩌다 보니깐 말버릇으로 정착이..”

 

웨인이 말을 끝내기 전에 힐이 말을 꺼냈다.

 

그때의 삶은 지금도 힘들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너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지

 

놀릴 줄 알았던 힐에게 예상 밖의 대답을 들은 웨인은 멍해졌다.

 

웨인의 말버릇이 된 대사가 나온 영화를 처음 본 날은 웨인이 5살이 되던 해이자 4살이던 힐을 친구로 처음 만난 날이었다

 

당시의 보육원은 은하계 총괄 정부의 행정력 미비에 외곽에 있어 감사에 자유로운 곳이었고 자유로운 만큼 보육원생들에게 향하는 지원도 자유로웠다.

 

급식으로 나오는 건 풀죽밖에 없었고 잠자리는 항상 추웠으며 선생들과 원장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먼지가 가득한 곳에서 낙이라곤 정부에서 아이들의 생활을 사진, 영상으로 찍어보내라는 공문이 오면 그날만은 보여주기식으로 깨끗한 보육실, 질 좋은 급식, 문화생활 하는 모습을 찍어 보냈다

 

그때만큼은 모든 원생이 아늑하게 자고 배부르고 행복하게 있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 중 문화생활이라 하는 것은 저작권이 사라져 행성 간 광속 대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영화 빔프로젝터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구닥다리 서부극을 보는 건 소수의 매니악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따분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의 원생들은 지루해서 잠을 자기 일 수였으며 몇 명은 떠들다가 혹독한 체벌로 합죽이가 된 채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웨인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날 이후로 쓰레기통에서 주문 구멍 난 냄비뚜껑을 머리에 쓰고 담요를 어깨를 걸치며 서부극에 나온 총잡이 흉내를 냈고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원생들을 괴롭혔던 선생이란 작자의 뒤통수에 대고 몰래 쏘는 시늉을 하곤 했다

 

총 쏘는 시늉을 한 뒤에는 무조건 서부극의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멋있게 권총을 몇 번 돌린 뒤 권총집에 넣고 혀로 끌끌 찬 뒤에 내뱉는 아디오스 카우보이라는 대사를 꼭 외쳤다.

 

물론 몇 번은 들켜서 흠씬 두들겨 맞고는 냄비뚜껑과 담요를 빼앗기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추위에 벌벌 떨었지만 말이다

 

웨인과 똑같이 서부극을 감명 깊게 봤던 힐은 그런 웨인의 장난을 받아주곤 했다

 

어떨 때는 정오 때의 결투를 어떨 때는 21조로 짝을 맞춰 선생들의 뒤통수에 손가락 총을 쏘는 시시콜콜한 장난을 같이하고 다니니 그 둘은 금세 단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13년 뒤에 웨인이 나이상의 이유로 3만 유피를 받고 보육원을 반강제로 떠나게 되었을 때 그들의 관계가 끊어질 뻔했으나 몇 개월 뒤 웨인이 보육원으로 힐을 찾아와 통조림, 침구류와 함께 자신의 연락처를 준 이후 지금까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난 아직도 기억나 네가 냄비뚜껑을 머리에 이고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 손가락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할 때 나는 옆에서 드디어 그 악명 높은 양갈래머리 제인을 처리했군요. 이 마을의 평화를 지켜주셨습니다. 라고 추임새를 넣고는 했지

 

그래서 내가 길 가다가 주운 판초하고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다니는 거지 많이 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걸 입고 있으면 무언가 견딜 수 있는 거 같은 힘을 주거든.”

 

보육원 때도 지금도 여전히 서부극에 나왔던 총잡이를 동경하는구나

 

맞아 나도 그렇게 멋지게 남을 도와주고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지금 꼴을 보니 그냥.. 그냥 죽지 못해 사는 거 같아 꿈을 꿔도 현실에 부딪혀 사라지기 일쑤고 내가 죽기 전에 그동안 꾸었던 꿈 중에 하나라도 이루고 사는 게 있을까?”

 

웨인...”

 

꿈은 높은데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아....”

 

이 말을 끝으로 아무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무언가에 입이라도 꿰매진 듯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둘 다 잠자리에 들었다.

무한한 공간에 따스한 빛을 전달하는 태양 주변의 행성과 항성들 그리고 그 근처에 달라붙어 있는 위성들과 목적 없이 공허를 맴도는 수많은 운석과 반대로 목적을 지닌 채 반짝이는 금박을 입은 채 날아가는 인공위성들이 제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이동하거나 뒤척인 채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조각은 우주먼지 일부분이 되어 웨인과 힐이 잠을 청하고 있는 은빛 트레일러에 부딪혀 노크하고 있었다.

 

평소 같은 주말이라면 알람도 없이 푹 잠에 취한 채로 반나절을 누워있다가 태양 빛이 일어나라고 얼굴에 빛을 쬐이면 그제야 일어나 대충 끼니를 때우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허송세월 가는지 모르고 보내다가 다시 배가 고파지면 배를 채웠다가 그리고 출근 전날에 잠자리에 들 때는 왜 이렇게 살지, 조금만 노력을 더 했으면 사무직을 얻을 수 있었을까?, 날 버린 부모님의 얼굴을 어떻게 생겼을까 등등 자기성찰적인 시간을 가지다가 잠자리에 들고 출근하는 삭막한 날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울릴 리가 없는 휴대전화에서 전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잠에 막 깬 웨인은 비몽사몽 하며 겨우 고장 난 텔레비전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고 전화를 받았더니 익숙한 크리스토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우... 크리스토퍼씨 무슨 일이야?”

 

잠에 덜 깬 저음으로 웨인이 말했다.

 

웨인씨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회사가 공중분해가 되었습니다

 

?”

 

웨인은 이게 꿈인가 싶어서 계속해서 물어봤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그러니깐 우리 회사가 알고 보니깐 해적들의 돈세탁 용도로 만들어진 회사였고 은하계 총괄 정부가 대대적으로 소탕해서 해적이었던 회장 놈이 교도소에 잡혀 들어갔고 회사는 정부가 일일이 해체했다는 소리인거지?”

 

아주... 정확합니다

 

크리스토퍼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웨인씨도 회사에 놔두고 온 거 있으시면 찾아가세요, 저는 빨리 다른 일을 알아봐야겠어요

 

소리를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웨인은 입안이 어벙한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곤히 잠이 든 힐을 깨우기 싫었던 웨인은 일이 있어 나갔다가 올 테니 냉장고에 있는 음식으로 아침을 챙겨 먹으라는 쪽지를 텔레비전에 붙이고 나갔다 그리곤 자기 짐을 챙겨서 나가는 사람들과 실직한 사람들의 분노로 붐비는 회사에 도착한 웨인은 자신의 캐비닛이 있는 휴게실 쪽으로 갔다.

 

웨인이 몇 년간 회사에 출퇴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물건이 도둑맞았다는 소문 때문에 웨인의 캐비닛은 언제 둔지 모르겠는 사탕 몇 개, 먼지가 잔뜩 쌓인 채로 방치된 동전 몇 닢과 혹시 몰라서 쓸 데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둔 이면지와 연필이 다였다, 그런 물건들을 보면서 처음 입사 했을 때와 여러 추억 아닌 추억을 생각하면서 몇십 분을 가만히 캐비닛에 서 있었다.

 

그나마 친분이 있던 크리스토퍼라도 보고 갈까 싶었지만 좀처럼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동전 몇 닢만 챙기고 웨인은 회사를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힐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서 와 웨인

 

힐 재료가 어디서 나서 스파게티를 만들었어?”

 

그냥 찬장하고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거 이것저것으로 만들었어.”

 

맛있겠는데 잘 먹을게!”

 

스파게티는 살짝 검붉은색이었지만 그것 말고는 괜찮은 스파게티였다, 두 사내는 그릇에 묻은 소스까지 포크로 훑어 먹었고 그제야 힐은 웨인에게 어딜 갔다가 왔는지 물었다.

 

그래서 어딜 다녀온 거야?”

 

웨인은 같이 집에 묵고 있는 친구가 자신이 실직자가 된 걸 알면 부담감에 빠르게 떠날까 봐 사실을 말하길 두려웠다, 하지만 둘러 될 말이 없어 사실대로 말했다.

 

회사 망해서 회사에 두고 온 짐이 있으면 챙겨가라고 해서 회사 좀 다녀왔어.”

 

 

힐은 놀란 나머지 의성어 한마디를 내뱉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냐 그 일 어차피 싫증 나기도 했고 어차피 그만둘 일이었을 거야 단지 그 시간이 좀 더 빨 왔다고 생각하지 뭐

 

웨인은 놀란 힐을 진정시키기 위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그대로 여전히 동공이 흔들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이럴 때는 무언갈 시키는 게 답인 걸 알고 있는 웨인은 힐에게 설거지를 부탁하곤 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서 걸터앉은 웨인은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독할 만큼 고요하며 고독한 검은 풍경이 오늘만큼 쓰라린 날은 없었을 것이다

 

이젠 뭘 해야 하지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생각나는 거라곤 이그나시아의 정신이 나간 계획밖에 없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이그나시아의 계획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내가 미친 건지 이 우주가 미친 건지

 

이그나시아에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 웨인은 트레일러로 들어가 설거지를 마친 힐에게 말했다.

 

, 이그나시아에게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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